양정공 신도비(襄靖公神道碑)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180-2
병조판서 희천군 시 양정 김공 우 신도비명
兵曹判書 熙川君 諡 襄靖 金公 宇 神道碑銘
추충분의 익대좌명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훈련원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시호 양정 김공 신도비명 병서 황주 변시연(邊時淵) 짓고 경주 김학영(金學英) 글 쓰고 아울러 전액도 씀
옛날 태종대왕께서 세제로 책봉되어 계실 때다.
역적 박포가 회안대군 방간을 앞세우고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침범해 왔다. 이때 상당부원군 이저 · 진산부원군 하륜 · 한산부원군 조영무 · 취산부원 군 신극례 등 공신들이 충의를 다하여 태종을 도와 난리를 평정했다.
역적이 처치된 후 그 일에 공이 컸던 38인을 공신으로 책록하였는데, 희천군 김우 공께서도 그 중의 1인이었다.
김우 공은 희천 출신으로 일찍이 무재가 있어 태종을 잠저 때부터 모셨는데, 이때에 이르러 공훈을 세우게 되니, 태종의 사랑은 각별하여 희천군으로 봉하고 좌군총제에 임명되었다가 안주도 병마절제사ㆍ도총제ㆍ병조판서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그 후 1418년(태종 18) 2월 19일에 세상을 떠나니 상은 조회를 3일 동안 받지 않으시고, 시호를 양정이라내리며 부조전을 특별히 명하시었다. 묘소는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180-2(산45번지) 유좌원에 있다.
옛날 임당 정유길 상공께서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됨에 따라 글자가 마멸되어 지금은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자 여러 후손들이 비석을 고쳐 세우기로 결의하고 창진과 준식을 시켜서 천리 길을 달려와 나에게 비문을 청하니, 나는 비문을 지을 만한 사람이 못되지만 역시 사양할 수가 없었다.
상고해 보건데, 공의 초명은 도길이요, 선계는 신라 대보공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신라 경순왕의 제8자인 추에 이르러 아들 셋을두었는데, 천·위옹·우 (佑)였다. 아들이 선산김씨ㆍ삼척김씨ㆍ 온양김씨의 시조가되었는데, 그 중 휘 우(佑)가 온양부원군에 봉(封)해진 것이다.
휘 우(佑)로부터 6대조를 지나 휘 용이 또다시 온양군에 봉되었는데, 이분이 공의 6대조고가 되며 5대조 휘 인과 고조 휘 복태는 중랑장을 지냈고, 중조 휘 진은 예빈시판사, 조부 휘 양익은 전객시판사를 지냈다.
선친은 희 영비로 강계만호였는데, 고려가 망하게 되자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 사적이 두문록(杜門錄)에 기재되었고 모친은 단양우씨로 고려 말엽의 명신인 역동선생 우탁의 딸이다.
공이 고려 갑오(甲年,1354년,공민왕 3년) 2월 5일에 출생하였는데, 평생의 사적이 상세하게 기록된 데가 없고 실록의 기재마저도 아주 간략하여 한스러울 뿐이다. 비록 그러하나 공께서 임금을 도와 난리를 평정하여 나라를 태산 반석 위에 올려놓았으니, 그 공훈과 위업은 백세에 빛날 것이다.
자손이 공의 봉호인 희천으로 본관을 고침으로써 공은 희천김씨의 중조(中祖)가 된 것이다.
아아! 그 존귀하심 누가 우러러 보지 않겠는가!
부인은 회진군부인 남원양씨 집원의 딸로, 1416년(태종 16) 10월 10일에 돌아가시자 공과 합장으로 산소를 모셨다.
아들은 셋을 두었는데, 큰아들 유지는 공을 이어 희천군이 되고 둘째 유신은 운산군수ㆍ셋째 유석은 서사를 하고 딸은 이숙의 아내가 되었다.
손자로는 유지가 아들 넷을 두었는데, 인문이 신창현감 의문과 예문은 다 후손이 없고, 신문이 그 막내이며 유신의 두 아들은 상의가 참봉을 지내고, 윤의는 그 다음이 되며 유석의 외아들인 혁이 군수를 지냈으며 손자 이하는 번다하여 다 적지 못하고 벼슬에 들어난 자만을 골라서 들겠다.
증손으로 총이 결성현감ㆍ일취가 장수현감ㆍ일진이 무과(武科)에 올라 감찰을 지냈으며 현손으로는 백순이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우부승지ㆍ계인이 무과에 올라 감찰을 지냈다.
5대손으로는 규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집의ㆍ엽이 진사ㆍ장손이 무과로 주부ㆍ극희가 갑산부사를 지냈으며, 6대손으로는 준계가 훈련대장ㆍ정이 운산군수 7대손으로는 엄이 기장현감ㆍ낙이 회령부사ㆍ택이 생원ㆍ신이 담양부사 8대손으로는 표가 강진현감ㆍ성립이 밀양부사ㆍ시범이 진사 9대손으로는 충남이 부사과로 위성공신에 책록되었다. 이상에서 공이 드리운 공덕을 증험할 수가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명(銘)을 쓴다.
오석시림(奧昔始林) 그 옛날 계림에는
천강금독(天降金櫝) 하늘이 금궤를 내렸는데(김알지의 탄생을 의미)
라운석경(羅運昔罄) 신라 천년 운이 다해 고려에 양보했네.
우시온양(于時溫陽) 이무렵 온양군 우(佑)는
구룡지일(九龍之一) 왕자의 한 분이었지.
역세십이(歷世十二) 그 후 12대를 지나도록
잠영불절(簪纓不絶) 벼슬이 끊이지 않았다네.
어호아공(於乎我公) 아아! 우리 공께서는
조유무략(早有武略) 일찍부터 무예가 뛰어나서
헌릉잠저(獻陵潛邸) 태종(太宗:芳遠)이 잠저에 계실 때부터
시애융흡(恃愛隆洽) 믿음과 사랑이 융숭하였다네.
백룡하세(白龍何歲) 백룡(경진<庚辰>년에 방간의 난이 일어났음)은 어느 해인가!
변기소장(變起蕭墻) 변란이 울안에서 일어났네.(회안대군 사건)
토역제간(討逆除奸) 공께서 역적을 토멸하시니
단서황황(丹書煌煌) 그 공로가 단서(공훈을 적은 책)에 황황히 빛났네.
기봉백리(旣封百里) 이미 백리 땅 봉(封)받으시고
승지숭작(陞至崇爵)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역명부조(易名不祧) 시호(諡號)와 부조전(不祧典)도 내리시니
경모우극(景慕尤極) 사모하여 우러름이 극에 이르렀네.
초예상승(肖裔相承) 어진 자손들이 대를 이어서
문란여석(門闌如昔) 가문이 옛날처럼 빛나고 있네.
채척승술(採摭乘述) 이는 사책에서 뽑아 쓴 것이지
이불작(而不作) 내가 지어하는 말이 아니라네.
서기 1988년(단기 4321년) 무진 9월 일 고쳐 세우다.